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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도서리뷰

by 진짜짜장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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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삼국지 전집 한 질을 다 읽지 못했다. 학창 시절엔 모 대학의 필독서라고 광고하며 '이문열의 삼국지' 읽기를 부추겼고, 당시 단행본의 소설책 한 권도 읽기 힘든 필력에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지만 왠지 뒤처지기 싫으면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1권을 갖고 몇 페이지 넘기지 못 넘겼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열 권이 너끈히 넘는 '만화 삼국지'는 단숨에 완독을 했고, 이후에도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 등의 매체에 관심을 갖은 탓에 사건의 정확한 순서는 나열하기 힘들지만 인물의 성향과 각각의 사건 전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삼국지'에 대한 비판적 읽기는 아니다. 나는 다만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에 대해 그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며 심지어 신앙과도 같이 추종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것은 작년 연말부터 보고 있는 조조와 제갈량에 대한 한 학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보면서, 이들 등장인물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데 과연 '진짜' 후한 말 역사적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삼국지기행 1권] 겉표지

 이 책 [삼국지기행] 시리즈의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라는 부제는 그 제목만으로도 삼국지의 역사적 무대를 실제 답사하며 당시 기록과 더불어 좀 더 객관적인 고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계기를 통해 중국을 여행할 때 바라보는 관점의 폭을 넓히고, 어쩌면 이 루트를 따라가며 여행일정을 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니 얄팍한 기대 이상으로 매우 진중한 의미를 담은 글들이 많았다. 또, 기본적으로 답사기라는 형식에 맞게 가볍고 솔직한 심정으로 발걸음을 뗀 모습도 느낄 수 있었다. 

[삼국지기행 1]의 주요지명과 정립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게 2009년이라고 하는데, 약 13년 만에 약속을 지킨 증보판이라니 정말 초판에서 다 못한 이야기들과 그동안의 변모해 있을 역사적 현장의 모습이 자못 궁금해진다. 그래서 저자는 현재의 변화된 유적지 사진과 초판의 사진을 함께 보여주며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초판의 서문에서도 언급했듯 주관적 사실에 주목하는 이유,  중화주의에 이로운 창조작업, 곧 '중화공정'에 대한 시대별로 당시의 이념에 부합하는 정치적 성향을 배제한 순수한 사건과 인물에 집중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을 보며 이것이 진정 '고전을 통해 오늘을 조명하는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삼국지기행] 시리즈의 대주제는 바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삼국지를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지침서'로 새롭게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첫 장에서 황건적의 산채와 장각의 묘를 찾아다니며 "삼국지의 영웅들은 모두 도적으로 몰린 백성의 고형을 빨고 도륙하며 위·촉·오라는 정치적 야심을 창출한 것이다."라고 하는 부분, 이어서 관우의 등장에 있어 "... 용을 신성시하는 중국인들의 문화와 관우 숭배 사상이 결합하여 후대에 생겨난 전설로 보아야..."와 같은 부분은 우리가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나눈 선과 악이었고, 무의식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영웅이었다. 특히 어느 도시를 가도 거의 신격화되어 있는 관우에 대해 관우의 생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후대에 미화되고 만들어진 영웅상에 대해 책의 곳곳에서 소설적 허구와 역사적 인물을 비교하며 짚어주고 있는데, 그와 관련된 것들을 중국인의 사상에 대해 기본지식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어서 무척 도움이 되었다. 또 한 가지, 허창에서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의 유비를 언급하며 "중국인은 대의명분을 취하지만 항상 실리적이다. 대의명분도 따지고 보면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라는 표현은 유비를 후흑에 뛰어난 자이며, 특히 면후(面厚)의 고수임을 증명하고 있다. 

저자가 어디를 가면 그와 관련된 한시(漢詩)가 첫머리에 소개되는 것도 참 좋았다. 마치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두 함께 여정에 참여하며 감상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특별히 유비 삼 형제가 '도원결의'를 했다고 전해지는 탁주에서는 일상회화가 문학적으로 녹아든 부분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유비가 짚신을 판다' = 훗날을 위해 일시적인 생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장비가 고기를 판다' = 가난한 사람에게는 싸게 팔고, 부자에게는 비싸게 판다는 뜻.
'관공 앞에서 큰 칼을 휘두른다' = 제 분수를 모르는 경우에 쓰는 속어

 또한 기타 조조, 동탁, 여포, 원소, 제갈량, 주유 등의 인물들과 얽힌 허구와 사실을 따라가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역사는 언제나 현실을 먹고살지만 현실은 때때로 역사를 괴롭힌다. 역사의 피와 살을 파괴하거나 생략함으로써 역사가 올바르게 걸어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은 잊고 싶든 내세우고 싶든 역사가 '미래의 현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잘못된 역사인식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여러 유적지들을 둘러보며 역사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그리고 허구적인 유적과 유물을 잘 가려서 보는 것 또한 삼국지를 음미하는 중요한 방법임을 저자는 계속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삼국지기행 1]은 적벽전투를 마친  상황까지의 사실을 기술하였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남양의 와룡유적지와 오림의 적벽유적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편에서는 나머지 사건들을 어떻게 소개할지 삼국지를 처음 읽는 듯한 심정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 찜찜했던 부분이 해소된 듯해 마음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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