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같이 변화 중인 가을의 정취에 푹 빠져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있다. 불과 한 달 반 전만 해도 추석임에도 불구하고 폭염처럼 느껴지는 늦더위에 집에서 에어컨을 켰던 일이 선명한데, 이제 겨울을 준비하고 있으니 너무나 아쉬운 마음만 간절하다.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내가 오늘 느끼고 있는 이 길을 달릴 수 있음이 얼마나 큰 감사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상기후로 인해 봄, 가을이 짧아지고 있는 탓도 있지만 불과 4년 전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경험했다. 이제는 먼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불과 5년도 채 안된 팬데믹 이후의 모습은 그 이전과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비대면으로 하는 활동에 익숙해졌고, 일상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SNS나 블로그, 유튜브(라방), 브이로그 등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도 변모하고 있다. 오늘 읽은 [너를 위한 B컷]이란 책도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시절을 시간적 배경으로 유튜브편집을 좋아하는 '최선우'이란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청소년 성장 소설이다.
근데 넌 유튜브 왜 하는 거야? 내 생각엔 채널의 방향성이 중요한 것 같거든.
돈 벌려고
당신의 SNS활동목적은 무엇인가? 다분히 금전적인 목적이 모든 답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것은 편집하며 다듬어 가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나타나리라. 미호가 선우에게 "넌 유튜브 편집도 하는 애가 SNS를 믿어?" 했던 것처럼 어쩌면 현실과 괴리된 채 보여주고, 비치고 싶은 것만을 원한지도 모른다. 그제야 선우도 깨닫게 된다. '현실과 편집된 세계 사이에는 누더기 차림의 신데렐라와 마법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신데렐라의 차이만큼이나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최선은 자신이 이 영상의 편집자이자 연출자를 자처하며 '학교나 써빈로긴에서의 모습과 날영상 속 민낯 사이에 느껴지는 괴리감을 줄이는 게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우가 무언가에 홀린 듯 숨은 편집자를 자처하는 일은 어쩌면 그쪽 부류에 끼고 싶은 잘못된 욕심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중요한 건 올바른 윤리의식을 갖고 자신의 재능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게 더 멋지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이 사회가 성적 지상주의를 지양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올바른 윤리의식이란 선우가 아빠와 같은 심정으로 결정을 내리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비리를 관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눈감았다면 결국은 나도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됐겠지. 그럼 계속 너나 네 엄마, 그리고 나 자신한테 부끄러웠을 거야. 아빠는 그게 제일 싫었어."...... 아빠는 부끄러움은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그게 사람을 인간답게 하는 거라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때로는 물리적으로 몸을 날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내면의 양심을 지키며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보았던 넷플릭스의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또한 이러한 의도를 바탕에 두고 있다. 만약 '영하'가 '성아'의 살인을 묵인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 본다. 다행히 두 작품 모두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결말에 치닫는다면 얼마나 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는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어쩌면 후회 없는 순간순간 진심을 담아 행동하고 그것들이 모여 삶이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데 이른다. 그리고 선우아빠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 우리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사 그만두고 이 일 저 일 할 때 처음엔 힘들었지. 적응하기도 어렵고. 내 일이 아닌 것도 같고. 그러다 깨달은 거야. 평생 이렇게 살다가는 후회만 남는 인생이 될 거라는 걸. 후회하는 대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개학이 연기되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과정들이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다.
영상을 편집할 때는 재미가 없거나 비호감으로 비칠 만한 불안 요소를 감추고 지우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바이러스는 편집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상황이 외계인이 침공해 오거나, 빙하가 녹아 물바다가 되고 있거나, 화산재가 해를 가려 빙하기가 닥쳐오는데 대책을 몰라 허둥지둥하는 영화 속 장면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세계가 이토록 취약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두려웠다.
결코 주목받기를 바란 적은 없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반응이 없자 뭔가 허전했다. 혼자 단절된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닥다닥 붙은 화면과 화면 사이가 갑자기 몇 십만 광년씩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이젠 이런 풍경이 아련한 추억처럼 미소 짓지만 당시에는 정말 절박했었다. 확진자 수가 몇 백 명에 이를 때 도시가 을씨년스럽게 적막해지고 당연한 듯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기피했던 당시를 돌아보니 지금 오늘의 일상에 자연스레 감사를 느낀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성장함에 발맞추어 나 역시 시나브로 더 나은 어른으로 나아가기를 이 책을 빌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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