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독 더위가 오래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추석 명절에도 온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에어컨을 틀어야만 했고, 뙤약볕에 밖에 나들이조차 엄두를 못 내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청명한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적정한 바람은 더욱 발걸음은 밖으로 재촉하게만 하는 듯하다. 왜 이런 이유가 발생했는지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우리 사는 세상에 태양이 사라진다면, 혹은 태양이 너무 강렬하다면, 이라는 가정은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 [태양을 지키는 아이]는 단연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든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봄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 풀과 나무가 생기를 되찾아 무성하게 변하는 시기,
나는 봄이 어떤 계절인지 경험하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내 삶은 여기서 끝나 버릴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봄을 꿈꾸던 시절,
할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했던 시절도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다.
- [태양을 지키는 아이] 181-182p에서 발췌.
유난히 더운 여름 못지않게 이 아름다운 가을볕을 얼마나 오래 만날 수 있을까. 그럼 겨울은 또 얼마나 빨리 만나게 될까. 이상기후에 대한 이슈가 가랑비에 옷 젖는 듯한 느낌을 넘어서서 일상적인 대화주제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태양을 지키는 아이]는 지금 이 가을에 읽는다면 더욱 감동이 클 것 같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계절의 변화를 비롯한 지금의 환경과 대비되는 책 속 극한의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릴리아가 봄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 나의 사계(四季) 역시 지금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며 눈물이 왈칵 났다. 그 시절의 기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기에, 살아갈 아이들이 짊어져야 할 이상기후에 대한 변화가 상상을 초월하기에, 그 아쉬움과 걱정의 감정이 교차한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더 뱉지는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비록 어른이라 할 수 없지만,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것쯤은 안다는 것.
- [태양을 지키는 아이] 92p에서 발췌.
어렸을 때 나는 적극적이면서도 소극적인 아이였다. 그것은 어린이로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나누고 내가 생각한 기준에 비쳐 이상의 책임 못질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린이(혹은 청소년) 성장소설에서 위와 같은 멘트가 나오면 으레 '그래, 극의 전개상 저렇게 가야 맞지.' 하는 생각을 하며 치부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미 어른으로 성장하여 기성세대에 편입해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가? 그래서 요즘엔 지금 나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위와 같은 기질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훈련을 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집 안의 어린이가 자라나듯 나 역시 계속적인 마음의 성장을 강하게 느낀다.
"이제······ 네 이름이 뭔지 기억할 수 있겠니?"
"뭐?"
"너에게도 틀림없이 이름이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니?"
소년은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 , 전혀 ······. 내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 [태양을 지키는 아이] 155p에서 발췌.
나의 이름은 나의 정체성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하쿠"라는 불릴 때 비로소 자기의 모습을 찾아가듯 이 책의 소년과 강아지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기억이 없다. 책의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지만 그만큼 '나'라는 사람의 첫인상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오픈채팅방에 몇 가지 동호회를 가입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설정을 안 한다면 자동으로 붙여지는 닉네임과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가 마치 유령처럼 자신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내 이름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떻게 기억될까? 번호나 닉네임이 나를 대신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참고로 소년과 강아지의 이름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
문득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무릎에 내 잠옷을 올려놓고 집에 홀로 앉아 있을 할아버지······. 나는 영원히 할아버지 품에 안겨 볼 수 없을 것이다. 톰과 테아도 떠올랐다. 냇물에서 노는 그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이 ······. 다시는 그 아이들도 볼 수 없을 것이다. 테아랑 노는 것이 그리 재미있진 않았지만 영원히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말도 이제 해 줄 수 없겠지.
마을 사람들도 하나하나 떠올랐다. 양치기 요나스, 농부 안나, 그리고 이삭 할아버지, 그들도 하나하나 죽어 갈 것이다. 냇물이 메마르고 강물이 줄어들어도, 해는 여전히 이글거리며 열기를 내뿜을 것이다. 결국 자연과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온 세상이 활활 타 버릴 것이다.
- [태양을 지키는 아이] 181p에서 발췌.
내 생명의 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와 어른에 상관없이)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그동안 내가 못한 일들,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은 결코 거창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이를테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전하지 못했던 아쉬움, 함께 즐거운 하루를 함께하지 못하는 것 등과 같이 그동안 내가 놓치고 있던 소소한 일상이 가장 소중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자연으로 인한 인간의 소멸은 인류가 제일 똑똑하고 잘난 척하지만 우리 또한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한 하나의 생물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내 주변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해가 두둥실 치솟았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강렬했던 햇살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나무와 꽃들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귓전에 들리는 것은 숨소리뿐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 [태양을 지키는 아이] 189p에서 발췌.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미세먼지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친해지는 과정을 통해 마스크 없이 깨끗한 공기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아 가고 있다. 변화하는 기후 못지않게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각종 질병과 그로 인한 재난은 인류의 이기적 행동에 제동을 건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해를 지키는 여인'을 보면 그렇게 살아가게 답습된 기성세대를 보는 것 같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도록 전 인류의 노력이 모아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나는 물레방아가 보이는 시냇가의 잔디밭에 앉았다.
물레방아는 흐르는 물살을 받아 내며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문득 이 세상이 물레방아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상.
- [태양을 지키는 아이] 209p에서 발췌.
그렇게 자연은 스스로 흘러간다. 우리도 자연을 닮아 계속 움직이고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세상의 이치이자 삶의 근원의 순환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주제곡인 Circle of Life의 가사와 같이 모두의 생은 순환한다. 그리고 '나'라는 생물은 죽어서 물질로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듯, 생은 장구하게 이어지고 순환하여 물레방아의 움직임과 같이 계속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이 땅에 온 것처럼 이어질 세대 또한 그렇게······.
이렇게 멋진 내용에 걸맞게 그림 또한 너무나도 압도적이다. 책에 대한 첫인상은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니 모두가 각각의 작품 그 자체다.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장면을 확인하는 듯해서 더욱 감동이 컸던 것 같다. 덧붙여 두 작가분들의 책들이 궁금하여 이들의 작품을 검색해 보기도 하였다. 이 가을,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로부터 내 발 밑까지, 이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진하게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며, 개인의 삶도 이를 둘러싼 환경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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