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쿠팡플레이>에 왕가위 감독의 몇 작품이 리마스터링 되어 올라온 것을 보았다. 마침 보고 있던 SNL코리아 시즌을 다 보고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리마스터링]을 다시 한번 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작 전부터 상당히 마음이 설레었는데, 어렸을 때 동경하던 홍콩 배우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첫 장면부터 금성무의 다소 어색한 연기와 표정, 어울리지 않는 말투 그리고 마치 일부러 엇박자 타는 듯한 흔들리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카메라 시선은 무슨 해석을 내리기 이전에 추억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에게 쉽게 첫인사를 떼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영화줄거리의 기억마저 희미했지만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정은 고스란히 남아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초 홍콩시내로 나를 옮겨 놓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금발 가발에 색안경을 쓴 임청하와 이 둘의 만남.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함께 앉아 위로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 위험을 헤쳐나가는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전하는 듯했다. 바통을 이어받는 양조위와 왕비. 이들 넷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듯, 이어진 잘 짜인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라고 느껴진다.
배우 양조위가 23년 초 데뷔 40주년을 맞았다고 하는데, 풋풋했던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정말 반가웠다. 양조위도 왕비도 제복이 참 잘 어울린다. 다소 엉뚱한 두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듯 참 닮은 구석이 많다. 이때 등장하는 '마마스&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크랜베리스'의 "드림스"를 광둥어 버전으로 리메이크 한 왕비의 노래는 개봉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이 영화의 시그니쳐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둘의 이야기에 비해 이들의 이야기가 좀 더 명랑 발랄하게 느껴지는 것도 영화음악이 한 몫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당시 영국에서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홍콩의 불안한 사회상과 암울한 미래상을 상징적인 장면으로 연출하고 있지만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한 지금의 현실도 당시의 시대적 불안과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홍콩의 정치적, 사회적 병합을 꽤 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야욕과 높은 인구밀도로 기본 생존조차 힘든 서민들의 경제적 압박감이 어쩌면 당시엔 당연시 여겨졌던 낭만의 여유조차 이젠 사치로 여기게 만드는 그들과 우리의 삶이 아닐까. 아직도 조그만 틈을 통해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그 시절의 걸작으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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